왜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듣고도 충격이 없는가?
우리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목사의 설교가 아니라
말씀대로 사신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들어야 한다.
크리스천이 배우고 들은 말씀대로 산다면 세상이 이토록 소란하고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많은 세월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헌금을 하는데도 많은 크리스천이 세상에 별다른 도전을 주지 못할뿐더러 그리 큰 감동도 주지 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듣고 배운 앎이 손과 발의 삶이 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실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처음부터 잘못 듣고 잘못 배운 까닭이다. 25년 동안 언론인으로 열정을 불사르며 기독교를 비판하다가 예수님이 진리임을 깨닫고 목사가 된 저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 행위를 하면서 좋은 신앙인이라 착각하는 크리스천에게 신앙의 본질을 찾고 생명의 길, 진정한 성숙의 길을 걷도록 도전하고자 책을 냈다.
길 잃었을 때 찾는 가장 빠른 길은 출발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신앙의 길을 잃었을 때 가장 빨리 찾는 길은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예수님 첫 설교의 자리로 돌아가 그 발 앞에 앉아 온몸이 귀가 되어 듣고 또 듣는 것이다. 예수님의 첫 설교인 산상수훈은 진정한 신앙인은 누구인가에 관한 말씀으로 시작해서,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들려준다.
하나님은 나의 행복과 웰빙과 힐링을 위해 존재하는가?
어떻게 어른스러워지는가?
우선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에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과 정반대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마치 나의 행복과 웰빙과 힐링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면서 사는 것은 오히려 죽음의 길로 내달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세상 기준을 넘어서는 진정한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어른스러워질 수 있는가?
내 권리가 먼저가 아니라 내 책임이 먼저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먼저가 아니다. 내 욕구, 내 욕망, 내 탐욕을 채우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소금은 날마다 하나씩 쌓아 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씩 잃어 가는 삶이다. 빛도 소금과 같다. 제 몸을 태워서 빛을 내는 것들은 언젠가 다 타 버릴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차고 넘치는 삶,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는 삶, 완성된 삶, 그리고 복 있는 삶이다.
이 책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 살인의 본질, 비판을 쉽게 하는 이유, 염려와 결별하는 방법, 돈에 묶이지 않는 비결, 바른 기도의 방법 등 이 땅에서 맞닥뜨리는 실생활에서 성숙한 신앙인의 태도와 기준이 무엇인지 명쾌한 통찰로 풀어준다. 또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성품의 집을 짓게 해 주며,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바꾸는 성숙한 신앙의 길로 안내한다.
책 속으로
예수님이 이 말씀을 선포하실 때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여전히 그들의 마음은 세상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 새로운 복에 대한 말씀은 왜 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백성, 앞으로 교회라고 부를 공동체 사람들은 이런 성품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교회는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애통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형제와 자매들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 이웃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 그리고 세상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온유해야 합니다. 날카로운 눈매가 아닙니다. 사사건건 지적하는 손가락이 아닙니다. 부드러운 눈길입니다. 교회는 파헤치는 은사가 아니라 덮어 주고 가려 주는 은사가 필요한 곳입니다. 잘못을 은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혈기로 하나님 나라가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3-24쪽
저는 세상을 바꿔 보고 싶어서 지난 25년간 열심히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 결과 진실을 말하는 것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즈음 정치권 입문을 제안 받기도 했지만 고사했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길은 오직 복음밖에 없습니다. 오직 사랑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되고 보니 크리스천이 세상 사람보다 더 미숙하고 더 어른스럽지 못한 겁니다. 이기적이고 고집불통이고 탐욕스럽고 교만한 겁니다.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 있는 겁니다.
어떻게 어른스러워집니까? 내 권리가 먼저가 아니라 내 책임이 먼저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가 아닙니다. 내 욕구, 내 욕망, 내 탐욕을 채우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그때 비로소 주장하기보다 경청하게 됩니다. 삼세 번 참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고 끝까지 참게 됩니다.
39쪽
신앙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의로움을 사람 앞에서 드러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으로부터 그 의로움의 상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굳이 또다시 상을 주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상은 우리가 무슨 일 끝에 받는 삯이나 임금입니다. 월급이지요. 월급 두 번 주지 않는 것 같이 사람한테 받았으면 하나님이 또 주실 필요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만큼 정확하십니다. 내가 사람을 의식하면 사람한테 받을 것이고, 네가 나를 의식하면 나한테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4쪽
염려는 OS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염려는 고장 난 믿음입니다. 염려는 회로가 망가진 믿음 체계입니다. 염려는 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병든 사고체계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믿음이 작아서는 절대로 염려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든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어떻게든 믿음에 붙들려야 합니다. 어떻게든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197쪽
무엇이 좁은 길입니까? 내 돈 손해 보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내 시간 손해 보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내 취미 생활 못하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나 때문에 해야 할 일 하지 않고 그 사람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일 하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나도 어려움이 많은데 다른 사람 힘든 얘기 들어주는 길이 좁은 길입니다. 그 모든 좁은 길의 특징은 나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로 교회 다닌다는 것이 진정한 교회가 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고, 성공하고 번성하는 대로의 시작인 것처럼 가르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로 몰렸던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248쪽
눈에 보이는 집 비유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신앙 이야깁니다. 바른 신앙이란 결국 좋은 성품의 집 짓는 일임을 들려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성품은 마음에서 시작해서 마음으로 짓습니다. 내면에서 시작되어서 내면에서 공사가 진행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줄곧 겉으로 드러난 종교행위가 우리 신앙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내면의 태도, 영적인 태도로 우리를 분별하십니다.
251-252쪽
프롤로그
1. 새로운 복_복이란 무엇인가?
2. 소금과 빛_흔적 없이 사라지고 있는가?
3. 살인_살인의 본질은 무엇인가?
4. 간음_음란의 뿌리
5. 정의_너희도 온전하라
6. 위선_제발 티 내지 마라
7. 기도_바로 살게 하소서
8. 재물_왜 돈에 묶이는가?
9. 염려_날마다 걱정하는 이유
10. 비판_왜 남을 쉽게 비판하나?
11. 좁은 길_남을 먼저 대접하는 길
12. 반석_좋은 성품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