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교회 시대, 절망과 오랜 방향 끝에서
교회를 향한 따뜻한 희망을 건져 올리다!
교회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동시에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도록 요청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우리는 사랑과 존중을 경험하기보다 아픔과 실망을 경험한다. 때로는 너무 큰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필립 얀시도 그런 경험을 했다. 사랑과 은혜의 공동체여야 할 교회가 배제의 복음을 설파하고 율법주의에 빠져 서로를 판단하는 모습에 질린 필립 얀시. 결국 그는 교회를 뛰쳐나오고 만다. 인생의 절정기를 교회 밖에서 보냈지만 그는 이 책에서 다시 교회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교회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떠올리며 교회로 돌아온 사연을 감동적으로 들려준다.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찾아온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은 교회를 더 뜨겁게 사랑하게 만들 것이다.
출판사 서평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교회가 갖는 이중적 특성에 대해서 자신의 고민을 나눈다. 스스로 교회를 떠나기까지 했던 자신의 아픈 고민과, 그 고민 속에서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된 생각의 진행과 과정을 풀어놓는다. 이 땅에서는 교회가 완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찾아가 설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인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수없이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그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사역들을 나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교회 때문에 고민하는 독자라면 저자와 함께 고민의 길에 들어가 함께 숙고하는 시간을 가질 기회가 될 것이다.
1장에서 저자는 어려서부터 자라온 교회가 자신에게 주었던 잘못된 인식들을 이야기한다. 조지아 주의 한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란 그는 설교와 교인들로부터 세상은 '위험한 곳이며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면 지옥불에 빠지는 것'이라는 교육을 묵시적으로 받으며 자랐다. 그는 결국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교회 밖으로 나가 교회 회의론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는 교회 회의론자에서 교회 옹호자로, 예배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변화된다. 교회를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위’(하나님)와 ‘주위’(이웃)와 ‘밖’(세상)과 ‘안’(내면)을 보게 됨으로써 교회가 ‘넓은 다양성’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2장에서 얀시는 고린도서에서 바울이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소개하는가에 초점을 맞추며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바울에게 교회란 ‘밭이고 집이고 성전’이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몸이라는 바울의 말은 압도적인 선언이다.
3장은 교회가 아름답고 좋은 것이지만 현실 교회의 모습은 완전하지 않음을 말한다. 아픔이 있고 눈물을 먹을 수 밖에 없는 현실! 교회의 시설이나 제도가 세상의 화려하고 질 높은 교육과 건물과 제반 시설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교회가 맡은 사명이 크며 소외되고 어려운 장애자들과 가난한자들을 감싸 안고 나가야 함을 말한다.
책 속으로
“지금 와서 보면, 내 유년기의 남부 근본주의 교회는 단순히 예배 처소나 신앙 공동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통제된 환경이었고 하나의 하부문화였다. 이제야 깨닫지만, 살벌한 정죄만 가득하고 겸손이나 신비를 인식하는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혹한 교회는 오랜 세월 내 신앙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한마디로, 기독교가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후 내가 신앙과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pp. 12-13)
“어떻게 나는 교회 회의론자에서 옹호론자로,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바뀌었을까? 나는 왜 교회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을까? 바로, 시간이 가면서 교회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배웠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학교를 골라 다닐 수 없는 것만큼이나 교회도 내 선택 소관이 아니었지만, 나중에는 선택권을 충분히 발휘하여 차례로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녀 보았다. 그 과정을 통해, 바른 교회를 찾는 열쇠는 내 안에 있음을 배웠다. 내 시각이 관건이었다. 교회를 대할 때 나는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밖을 내다보고, 안을 들여다보아야 함을 배웠다. 교회를 겨우 참고 견디던 내가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이 새로운 시각 덕분이다.”
(p. 18)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어디에 사시는가? 세상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임재는 더 이상 시나이 반도의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은 당신과 나같이 평범하고 못난 사람들 속에 살기로 하셨다....일요일 아침에 예배당 좌석을 채운 사람들을 둘러보면, 하나님이 어떤 모험을 감행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제 하나님은 불 기둥이나 구름 기둥으로도 아니고, 갈릴리에 오신 아들의 물리적인 몸을 통해서도 아니고, 내가 다니는 교회를 비롯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다른 모든 교회를 구성하는 잡동사니 인간들을 통해서 세상에 자신을 계시하신다.”
(pp. 76-77)
한국의 독자들에게
1장 나의 교회 방랑기
교회 밖을 겉돌던 시절 / 위를 올려다보다 / 주위를 둘러보다 / 밖을 내다보다 / 안을 들여다보다 / 미시건 호숫가의 새로운 표지
2장 하나님의 스케치
교회의 적절한 은유를 찾아서 / 하나님의 12단계 모임 / 하나님의 운전면허 관리 공단 / 하나님의 응급 진료소 / 하나님의 전철 / 하나님의 가족 / 하나님의 선수 탈의실 / 최고의 은유
3장 벽을 넘어서
왼발의 혹 / 눈물을 먹는 시간들 / 눈물도 양분이 된다 / 약할 때 강한 우리 / 고통을 덜어 주는 굳은살 / 계속 시도하는 사람들
“미국의 기독 작가 필립 얀시는 자신의 책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IVP)의 모두에서 자신이 왜 교회를 떠났는지, 그리고 왜 다시 교회로 돌아왔는지, 돌아온 교회에서 어떻게 적응했는지를 설명한다. 결국 교회에서 의미를 찾게 된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고백적으로 말한다. 얀시의 책 제목은 2011년을 사는 한국 크리스천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고민하며 통곡하는 이름 모를 신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고민 끝에 교회 회의론자가 되고, 결국 울타리를 떠나 교회 구경꾼이 되어 버리는 신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얀시의 책을 꼭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어떻게 그가 교회 회의론자에서 옹호론자로, 구경꾼에서 참여자로 바뀌었는지가 나와 있다.
얀시는 시각을 바꿨다. 고린도전서 묵상을 통해 교회란 하나님의 몸이며, 예배란 집 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는 가족이며 함께 살기 싫은 사람이 반드시 살고 있는 곳, 자신의 고통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교회는 하나님의 모험이요 도박이었다. 위험한 도박을 하면서까지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됐다. 그는 고백한다. “교회의 흠 많은 인간들 속에서 나는 희망의 역설적 징후를 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투박한 질그릇인 우리 안에 살기로 결정한 것은 그분이 우리 인간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다.” 한국 교회라는 큰 배가 낡아서 삐걱거리고 흔들린다. 그러나 기억하자. 결국 그 배는 목적지까지 잘 갈 것이라는 사실을. 그 배에는 흠 많은 선원들과의 ‘위험한 도박’을 회피하지 않는 사랑의 선장이 계신다.“
_이태형 국민일보 I미션라이프 부장 서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