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하나님의 은혜로 이를 수 있는 믿음의 최고 단계는 어디인가?
탁월한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포기하지 말라!
교회 생활에 드는 시간과 돈이 얼마인지 계산하는가? 성도의 삶이 편한지, 재미가 있는지, 인기가 있는지를 묻고 있는가? 그렇다면, 신앙 연수와 상관없이 아직 어린 성도일 뿐이다. 우리는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 뜻에 내 삶을 맞추고,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믿음의 단계에 올라서야 한다. 바울이 달려간 믿음의 경주, 초기 교회 영적 위인들의 삶, 빌립보서와 여러 경건서를 인용하며, 토저는 우리에게 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나 비범하고 탁월한 영성을 갖추는 길로 나아가라고 외친다.
나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은폐의 장막을 거두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받는 은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원수로 여겨야 한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버티고 서 있는 게 친구나 가족이라면 그들은 나의 원수다. 내가 한때 경험한 패배나 승리의 기억, 또는 내 은사가 하나님과 나 사이를 막고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원수다. 교만과 완고한 마음, 자기 의지와 자기애, 돈과 지위에 대한 사랑 역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방해한다.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영적 성장이 시작된다.
시대는 다르지만 여전히 시의적절한 복음 메시지
완고하지만 위트 있는, 엄하지만 다정한 설교자
A. W. 토저는 빌립보서 3장을 본문으로 삼아 성도의 믿음에 관한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 준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하나님 뜻이 우리 각자의 십자가로 어떻게 실현되는지,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세태에 대한 분노, 영적 침체에 빠진 교회에 대한 염려, 주님의 완전한 제자가 되기로 결단한 성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책이다.
* 목차
이 책을 엮으며: 온전한 믿음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제1부 온전한 믿음을 열망하다
1장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려는 갈망
2장 평범함을 벗어나 영적 탁월함 갖추기
제2부 온전한 믿음을 향해 나아가다
3장 연약하고 가련하며 나태한 저를 깨워 주소서
4장 그리스도를 알고자, 내게 유익하던 것을 버립니다
5장 내면의 추함과 빈곤함을 인정합니다
6장 내 온몸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제3부 하나님을 가리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다
7장 지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오만
8장 하나님의 흠을 찾으려는 완악함
9장 겸손을 가장한 영적 우월감
10장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욕심
제4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함에 이르다
11장 복음으로 얻은 자유의 힘
12장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의 길
A. W. 토저의 기도: “온전한 믿음을 향해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설교 출처
* 본문 맛보기
<12-13쪽 중에서>
《온전한 믿음을 추구함》의 기본적인 전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낮은 수준의 삶에 머물고 있는데, 그들의 신앙고백이 그저 그 자체로 다 된 것이 아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토저는 전해진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그 복음을 한 번 받아들이고 끝나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며, 순전한 예배를 드리면서 점점 더 성장해 가야 하는 삶의 시작점에 불과하다고 자주 설교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빌립보서 3장)에서 기술한 것처럼, 토저는 이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가 다양한 영적 성장의 단계를 거친다고 믿었다.
<49-50쪽>
사람들이 묻는 또 다른 질문이 있는데 이 질문은 훨씬 나쁘다. “그것은 편한가요?”라는 질문이다. 하나님의 사역이 어떻게 그 백성의 편의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진보는 반드시 불편을 감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만약 어떤 일이 불편하지 않다면 그 안에 십자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순탄해지고 그 속에서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면, 그 안에 어떤 어려움과 번거로움과 희생의 요소도 없다면, 우리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만약 늪과 봉우리 사이 중간 지점에 멈춰 서서 하찮은 천막을 치고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그저 그런 어중간한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102-103쪽>
유감스럽게도 기독교는 너무 자주 하나님께 무언가를 얻으려는 방법으로 전락해 왔다. 어떤 사람은 수입의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자신에게 남은 10분의 9가 그들이 드린 10분의 1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더 불어나기를 바란다. 사업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며 바울의 권면도 아니다. 바울은 그런 것을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 그리스도인이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기독교를 이 땅에 서 번영을 누리고 천국에서도 저택 하나쯤을 확보하려는 수단으로 여기는 행위는 위험하다. 이는 이 땅과 천국 어느 쪽에서든 이득을 보려는 행동이다. 주님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이 땅에서 번영을 누릴 것이다. 하지만 형제자매여, 주님을 따른다고 언제나 재정적인 번영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을 위해 그런 것들을 해로 여김을 뜻했다. 어떤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번창하고 나서 하나님의 길을 배우게 되면, 그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된다. 그래도 자신이 먹고사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는 삶을 유지할 기본적인 것을 모두 가졌고, 그 이상은 크게 근심하지 않는다.
<120-121쪽>
페늘롱은 말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끊임없이 좇는 일에 이상하리만치 창의적이다. 세속적인 사람들이 거칠고 뻔뻔하게 하는 일들을,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그 일들을 더욱 교묘하게 행한다.” 이해하겠는가? 거의 헛웃음이 나올 지경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자신의 이익을 좇는 능력이 출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수천 명이 선교, 치유, 예언, 더 깊은 영적인 삶,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이용해서 오직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은밀히 도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그것들을 핑계로 삼아 진심을 잘 덮어 두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추한지 결코 알지 못한다.
<140-141쪽>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오직 그분을 바라보고 흠모하는 것뿐이다. 오직 그분과 같아지고 함께 부활해서 그분을 나타내며 권능을 입기를 바라며 “하나님, 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이다. 한때는 교회에 성경을 되찾아 줄 개혁이 필요했다. 한때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고 깨끗함을 얻으라고 가르칠 개혁이 필요했고, 웨슬리파의 주도하에 그것을 이루어 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흠모하며 하나님께 시선을 모으고 그분이 일하도록 해 드릴 개혁이 필요하다. 교리상으로 건전해 보인다 해도 영적이지 않고 그리스도답지 않고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모두 버리라. 그리고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이 일하시도록 하고, “십자가여, 은혜의 십자가여! 내가 너를 품는다”라고 말하라.
<180쪽>
우리의 구름 목록에 돈을 추가해도 될까? 옛 성도가 말했듯, 오늘날 “여러분과 여러분의 하나님 사이”에는 돈이 들어와 있다. 여러분은 10달러짜리 동전 두 개로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릴 수 있다.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 정상에 오른 뒤, 초록으로 굽이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동전을 눈앞에 대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전부다. 산들은 여전히 햇볕에 미소 짓고 있지만 여러분은 보지 못한다. 두 눈을 동전이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 단돈 10달러만 있어도 그것이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들면 구름처럼 여러분에게서 하나님을 가리게 된다.
<184쪽>
이 구름은 무엇인가? 돈, 친구, 지위, 사랑하는 사람, 두려움, 내가 주장하는 모든 것, 내 것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 야망, 자부심, 고집, 자기 의지, 그리고 성령이 우리 삶에서 잘못되었다고 지적할지 모르는 모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여러분만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질투할 만큼 사랑하시며 어떤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 경쟁 상대가 무엇이든 다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구름이 된다.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여러분이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이 놀랍고 거룩한 빛과 그분을 완벽하게 사랑하고 합당하게 찬양할 우리의 능력이 여러 세대 동안 억눌리고 타격을 입어 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 어둠의 구름을 발아래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구름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떠 있도록 내버려 두기 때문이다.
<228쪽>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한다. 직업을 얻기 위해,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마음의 평화를 얻고 천국에 가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할 사람들을 찾으신다. “하나님,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주님을 갈망합니다. 제가 당신을 원합니다. 주님 안에서 안식을 찾기까지 제 마음은 고통스럽고 쉼을 얻지 못합니다. 제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갖기보다는 주님만 섬기기를 원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재물을 갖고도 하나님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과 함께하며 동전 한 푼만 갖는 편이 낫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망각의 구름 아래 둘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은 누구도 그분의 자리에 서서 그분의 자리를 빼앗거나 심지어 아주 조금이라도 그분을 대신하려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자신 곧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신다.
<259-260쪽>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처럼 지금도 동일하시고 또 영원토록 동일하실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신 여러분과 같은 형상을 지니신 형제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여러분의 모든 문제와 약점과 죄를 아시는 분, 그럼에도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을 전적으로 책임지신다. 그분은 우리를 비추시는 태양이시다. 밤하늘의 별이시다. 우리 희망의 반석이시다. 생명이며 생명을 주시는 분, 우리의 안전과 미래, 우리의 의와 거룩함이시다. 우리의 유산이시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이며, 언제나 응하시며 친근하게 다가오신다. 여러분은 오직 눈을 감고 믿음으로써 마음을 그분께 향하면 된다. 예수님을 향한 여정은 발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는 여정이다. 여러분의 발은 어디든 있을 수 있지만, 오직 여러분의 마음만이 그 여정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