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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는것(그리스도인으로생각하며살아가기)

강영안   |   Jul 24, 2024
  • $32$20.8 (35 %)
  • 주문수량 권(EA)

  • 상태 : 주문가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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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 : 244쪽
  • 무게 : 468g
  • 출판사 : 두란노(도서)
  • ISBN : 9788953148758
  • 상태 : 주문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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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 책 소개


우리 시대 다정한 기독교 철학자
강영안 교수의 핵심 키워드, ‘생각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통전적 고찰!


지금 우리에게 그가 묻는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나요?”


철학은 물음에서 시작하고, 신학자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강영안 교수의 생각이다. 동서고금의 사상과 사유의 깊이와 넓이를 알지만, 구체적이고 소박한 일상의 ‘복음적 생각’으로 안내하는 우리 시대의 다정한 철학자이다.
전세계 어디든 현대인의 삶은 고단하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지키고 버텨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더욱 그렇다. 다만 이 위기의 시간 속에서 자칫 ‘생각의 주체’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채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없이 살아가게 되는 참혹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질문하는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권하고, 그 출발 지점에 ‘생각하며 살고 있나요?’라고 친절하게 묻고 있다. 저자가 ‘생각한다는 것’을 통해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나누고 싶은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알아가고 만나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생각하지 않기는커녕 생각이 너무 많아 도리어 생각을 끊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형국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각들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권한다. 저자는 서양철학과 동서양의 고전을 비롯해 히브리어, 라틴어 등 다양한 언어들을 다루기에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체 3장에 걸쳐 생각의 방향과 방식을 풍성하게 안내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마주해야 할 세 가지 질문,
그 답에 그리스도인의 통전적 삶의 열쇠가 있다


저자는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왜 믿음과 생각은 서로 배척한다는 오해가 있는지, 그러면 생각이라는 것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리스도인의 생각 방식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지적 탐구와 교양을 갖추면서도 성경과 충돌하는 듯한 간극 속에서 어떻게 생각을 수용하고 정리하고 발전시켜 나갈지 궁금한 이들에게 이 책을 탐독하기를 권한다. 지혜가 담겨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기에 복음적이며 자아 중심에서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이타적 넘침의 삶으로 다가가도록 돕는다. 선택과 자유의지, 책임과 사명, 그러면서도 기독교가 갖고 있는 믿음의 공동체성 즉 타자를 위한 삶을 독자에게 떠오르게 하고 질문의 답을 찾아가게 한다. 데카르트, 반 퍼슨, 에마뉘엘 레비나스, 자크 엘륄, 칸트, 한나 아렌트, C.S 루이스 등의 사상이 성경에 기록된 방대한 말씀들과 교차되며 풍성한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예수님의 생각과 삶의 근본 태도를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자신과 공동체를 살리는 것인지 구체적인 예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거주한다면 끊임없이 채우려 하기보다 오히려 넘쳐흘러 타자들과 나누는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의 방식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에 왜 ‘생각한다는 것’이 자리하는지 알게 한다. 앎과 믿음을 통해 예수님의 삶과 생각의 방식을 따르기 원하는 개인 혹은 공동체라면 차근차근 읽고 나누기에 좋다.


 

* 차례


들어가면서


1장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1 믿음과 생각은 서로 배척한다는 오해: 반지성주의
2 ‘생각하지 말라’ vs ‘생각하라’
3 생각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세 가지 사례


2장 생각한다는 것
1 생각이라는 현상
2 그러면 생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3 생각의 윤리


3장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한다는 것
1 생각하는 그리스도인
2 그리스도인이 생각해야 할 방식
3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나가면서


 


* 독자 대상


- 철학, 신학,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
- 생각하기를 좋아하지만 생각의 방향이나 목적을 잃어버린 분
- 동서양의 고전과 사상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접목하기 원하는 분
- 앎과 믿음을 통해 신앙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기 원하는 목회자와 리더
- 자신의 지성과 인문학적 소양들을 복음적 기준으로 살펴보고 싶은 그리스도인
- 교회의 문턱 경계에서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싶은 교양인
- 질문이 많은 젊은 자녀 혹은 세대들과 복음적 생각과 토론을 공유하고 싶은 분


 

* 들어가면서


그리스도인에게는 단순한 생존이나 성공이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부름 받은 자로, 보냄 받은 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로 이 세상을 생각하면서 사는 목적은 이 정체성에 따라 반응하고, 책임지는(responsible)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시고 낮추시고 희생하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삶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어야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의 생각을 품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본문에서


* 그런데 생각하고 반성하고 따져 보고 물어보는 태도가 믿음과 반대되거나 믿음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믿음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행위가 생각 없이, 물음 없이 정말 가능할까요? 반례를 곧장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처음 전파될 때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보인 반응은 다름 아니라 바로 ‘질문’이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_19~20쪽


* 회개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된 생활을 떠나 새사람이 되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합니다. 크게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 자체를 보면 ‘회개한다’는 말은 ‘생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생각이고, 사고방식이고, 그에 따른 삶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위, 나타난 행동이 바뀌는 것만으로 사람이 완전히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 가치관, 신념이 완전히 바뀌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고 바깥 행위만 바뀌기 때문에 실제 삶에는 복음의 능력, 복음의 열매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려면 교회에 들어올 때 머리는 문밖에 떼어 놓고 가슴만 가지고 들어올 것이 아니라 가슴과 함께 머리도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_28쪽


* 악마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한 자신의 편으로 쉽게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책을 가까이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편지에서 스크루테이프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줍니다. 언젠가 그가 맡았던 ‘환자’는 무신론자였는데, 대영박물관에서 책 읽기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책을 읽는 동안 환자의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못 하도록 마음속에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집어넣어 더 이상 반대편으로 가지 못하도록 시도했고, 덕분에 그 사람은 이제 지옥에 안전하게 와 있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지 않도록 해라”, “생각하지 못하도록 방해해라”, 이것이 스크루테이프가 악마 웜우드에게 끊임없이 충고하는 말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악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_50쪽


* 문화적, 지역적 차이뿐만 아니라 신앙의 차이도 생각의 방식, 생각의 방향과 관련해서 중요합니다. 유신론적 신앙인가? 무신론적 신앙인가? 유신론적 신앙 가운데서도 유대교적 신앙인가? 이슬람적 신앙인가? 아니면 기독교적 신앙인가? 어떤 신앙인가에 따라 세계와 삶과 자신을 보는 데서,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깁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로마가톨릭 신앙인가, 개신교 신앙인가? 개신교 가운데서도 루터 전통의 복음주의 교회의 신앙인가, 칼빈을 따르는 개혁 교회 신앙인가에 따라 사고의 방식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_78~79쪽


* ‘창의적 사고’ 못지않게 ‘공동체를 세우는 사고’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소중합니다. ‘공동체적 사고’란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공동의 선’, ‘공공선’(common good)을 세우는 방향을 향해 살아가는 사고의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크게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든지, 남에게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든지, 다른 사람들이 싫어할 일은 해서는 안 된다든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도와준다든지, 나 자신의 이익보다 이웃과 공동체, 이 가운데서도 약자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든지, 이런 것들을 알고 행동할 수 있는 사고를 우리는 ‘공동체적 사고’ 또는 ‘공공선을 위한 사고’라 부를 수 있습니다. 공공선을 추구하는 공동체적 사고는 타인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능력입니다. _104~105쪽


* 우리가 홀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서로 돌보고, 서로 관심 갖고, 서로 세워 가도록 애써야 합니다. 비록 현재 만족할 수 없는 삶의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우리를 부르신 그 소망에 기대하고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읽고 생각하고 모색하고 숙고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자세를 한순간도 흩뜨려 놓을 수가 없습니다. 토론을 위한 토론, 논쟁을 위한 논쟁이 아니라 영적으로 서로 세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토론하고 논쟁해야 합니다.  _158쪽


* 신앙은 우리의 전인격적 행위입니다. 신앙은 단순한 지성의 활동만도, 감정의 활동만도, 또는 의지의 활동만도 아닌, 온 인격이 투여된 전인적인 활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만을 내세우는 지성주의만, 또는 가슴의 체험과 느낌과 감정만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만, 의지의 결단을 내세우는 실천주의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성과 신비와 실천, 이 셋 다 신앙의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어느 하나 없이, 어느 하나를 배제하고서 온전한 신앙을 말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신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탁하고자 그분만을 궁극적으로 신뢰하려고 하는 의지, 좋아하는 감정, 그분이 누구신지,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고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생각하고 아는 지식을 모두 한결같이 중요하게 받아들입니다. _194쪽


* 바울은 한마음을 품어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자기 일을 돌아보되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고 권고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생각을 말합니다. 바울은 같은 생각을 품으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에서 ‘마음’도 생각을 두고 한 말입니다. 예수의 생각, 예수의 사고, 예수의 삶의 근본 태도가 우리에게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근본 태도, 사고방식은 겸손인데, 예수님의 겸손은 다시 자기를 비우시고 낮추시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여 내어 주신 것으로 실천되었습니다. _199~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