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생명의 충만함을 잃어버린 도시는 그 자체로 삭막한 공동묘지와 같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도시의 일상에 시달리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세속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 탈진하고 소멸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자신만의 삶의 패턴과 리듬을 잃어버린 채 세속이 작곡한 현대성의 노래 위에서 광대처럼 살아가게 된다. 따라서 신을 잃어버린 세속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는 에덴동산과 같은, 세속의 일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시공간이 필요하다.
2021년 온 나라가 부동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던 시기에 『도시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라는 저서를 통해 교회가 하늘에 속한 땅이자 도시의 공적 파트너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대안을 제시했던 도시신학자 김승환 박사가 3년 만에 세속 도시의 영적 빈곤함을 충만케 할 방법에 대한 숙고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도시를 어떻게 충만케 할 것인가?』에서 저자는 갈수록 메말라 가는 세속 도시를 되살릴 신학적 개념으로 ‘충만함’에 주목한다. 끊임없이 무엇인가 소비하고 소유하려는 세속의 삶에서, 그러나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연결이 있어야 도시의 일상을 재창조할 수 있고 신성한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다. 저자는 마치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한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하여 시원한 물을 가득 쏟아붓듯 도시의 한복이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지는 시공간의 예전을 주목하면서, 평화, 안식, 환대를 통해 영성과 초월성을 잃어버린 도시의 영혼을 충만케 하는 다양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1-3장은 도시의 일상의 관한 저자의 신학적인 탐구를 담고 있다. 그는 일상 신학, 공간 신학, 근원적 정통주의(Radical Orthodoxy) 신학을 기반으로 ‘시간의 충만함’을 논한다. 목적 없는 새로움과 속도를 추구하는 세속 도시에서 찰나에 경험되는 신성한 시간은 유한한 존재가 영원한 그분과 조우함으로써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비의 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어서 4-6장에서 저자는 공간과 장소신학의 관점에서 도시 공간의 세속화를 비판하고 공간의 기원으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을 제안하면서 거룩한 공간과 관계적인 장소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하나님을 떠나 거룩성을 상실한 도시 역시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의 일부이고 그분의 다스림이 미치는 곳이자 우리 일상의 영역인 동시에 선교의 영역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도시의 일상과 공간을 새로운 신앙 경험과 표현의 장소로 삼고 그 안에서 함께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욕망과 물질이 지배자 노릇을 하고 있는 이 도시의 한가운데서 여전히 신성함과 거룩함으로 충만한 시간, 공간, 일상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또한 도시를 선교지로 삼아 이 장소를 회복하고자 하는 소명을 품은 목회자라면,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신학적 성찰과 상상을 공유함으로써 각자의 신학적 고민을 풀어나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토속 신학자를 통해 (서구 신학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현대 도시에 관한 신학적 반성이 이루어졌다는 점이 매우 고무적이다.
차례
서문_ 도시는 영원한 것을 갈망한다
1장 도시적 일상과 해체된 리듬
왜곡된 도시의 일상
일상의 해방과 구원
일상의 창조적 실천
2장 세속적 욕망, 도시의 엔진
얼굴 없는 도시와 기계화된 자아
고독한 자아와 단절된 장소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내러티브와 예전의 재구성
3장 예전, 시간의 충만함
삶의 예전으로서의 일상성
진정한 것의 발견
시간의 충만함
은총의 선물로서의 일상
4장 삼위일체의 공간과 공간성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간성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세상
피조물의 공간인 하나님의 세계
십자가, 타자를 향한 포용의 공간
성만찬, 화해와 일치의 공간
새로운 공간을 살아가는 부활의 존재들
5장 거룩한 장소의 정치학
신을 추방한 세속 도시
종교의 복귀와 거룩한 공간들
거룩한 장소의 정치학
교회는 도시의 거룩한 공간일 수 있을까?
6장 공간을 살아간다는 것
장소와 공간의 변증법
공간의 내러티브
공간을 기억한다는 것
머무름의 의미
성찰적 걷기와 공간 묵상
7장 그리스도인의 충만한 하루
샤바트와 메누하
새로움이 기준인 현대 사회
일상의 거룩함
숨, 쉼, 섬
충만한 공간으로서의 집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는 것
에필로그
참고문헌
추천사 중에서
하나님을 떠나 거룩성을 상실한 도시 역시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의 일부이고 그분의 다스림이 미치는 곳이자 우리 일상의 영역인 동시에 선교의 영역이다. 우리는 이 공간에 대해 신학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이 작업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저자의 노고가 담긴 이 책이 우리의 눈을 열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김기현|한국침례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 윤리 교수,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의 저자
이 책은 일상과 공간을 새로운 신앙 경험과 표현의 장소로 탐색한다. 일상은 세속성이 아닌 초월성과 접하는 곳이자 영적 충만함을 회복하는 현장으로 거듭난다. 저자는 도시, 공간, 시간, 일상과 같이 우리가 평범하게 지나치는, 그러나 사실은 매우 비범하게 떠오르는 주제들의 신학 지도를 그려준다. 그 지도 안에는 삼위일체, 창조, 십자가, 성만찬, 부활의 신비가 충만하게 채워져 있다. 특히 이 책은 한국 신학자의 선구적 저작이라는 진귀한 가치를 지닌다.
김선일|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도시에서 구원을 경험할 것인가? 구원의 시간만을 추구하는 우리는 구원의 장소이며 일상의 터전인 도시에서 충만한 삶의 의미를 잊은 지 오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참 반가운 책을 만났다. 도시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도 신비도 거룩도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영혼의 서사를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자신만의 거룩한 공간을 생의 충만함으로 채우고자 갈망하며 외롭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일독을 권하고 싶다.
김은혜|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문화 교수
올여름 휴가를 시작하면서 이 책을 읽었다. 추천사 요청에 확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고를 펼쳤는데 짧으면서도 명쾌한 글의 호흡에 이끌려 단숨에 읽기를 마쳤다.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의 삶에서 신성함과 거룩함으로 충만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일상을 추구하려는 열망이 있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목광수|서울시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최근 한국의 젊은 신학자들은 이전 세대가 집중하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주제들에 주목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성과를 제출하고 있다. 김승환 박사는 그중에서도 매우 탁월한 통찰력으로 도시, 디지털 등의 영역에서 신학적 작업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책이 한국신학의 새로운 지향을 제시하는 좋은 자료가 되기를 기원하며 저자의 열정을 응원한다.
성석환|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와문화 교수, 도시공동체연구소장
저자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수십 년간 목회 현장을 떠나지 않은 목회자다. 그 오랜 기간의 노력과 애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저자는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도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도시를 위해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집어낸다. 도시를 선교지로 보고 도시의 회복을 위해 부름을 받은 오늘날 교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심성수|라이프처치 담임목사
총체적 뒤틀림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시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대상임을 고백하는 신앙인들에게, 이 책은 이 시대의 주요한 신앙/신학적 과제를 제공한다.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이웃들을 품는 ‘도시의 충만함’으로의 초대에 일상의 신실함으로 응답하는 우리의 여정을 밝히는 명료한 안내서를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환영한다.
임성빈|장로회신학대학교 전 총장
본문 중에서
영적인 것이 재발견되는 오늘날 일상에서 거룩한 이야기는 우리를 초월적인 삶으로 재무장시킬 뿐 아니라 느슨하지만 매력 넘치는 공동체로 안내한다. 세속의 현실에는 하나님의 피조세계가 갖는 생명력 넘치는 존재들을 품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시공간, 즉 관계성과 초월성으로 꽉 찬 충만한 시공간이 필요하다.
_“서문_도시는 영원한 것을 갈망한다” 중에서
세속 도시에서는 나와 연결된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계약 사회를 추구했다. 우리는 현실 사회의 이웃 됨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참된 이웃과의 관계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일상을 재조명하는 것은 우리의 삶 안으로 충만함을 끌고 들어오는 것이고, 오래된 거룩한 이야기를 이웃과 함께 실천하면서 현대의 삶으로 재번역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충만한 이야기와 공동체의 전통은 세속의 일상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일상 신학의 과제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세속의 이야기를 거둬내고 거룩한 언어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이야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일상의 재구성은 그렇게 시작된다
_“1장 도시적 일상과 해체된 리듬” 중에서
소비적 일상이 제공하는 욕망은 근본적으로 종교성에 기초한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소비의 사회』에서 정작 인간이 소비 과정에서 소비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 놓은, 아니 물건에 부여한 상징과 이미지라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소비는 사회적 기호를 향한 욕망이다.
_“2장 세속적 욕망, 도시의 엔진” 중에서
진정성과 영성이 종교성을 대체한 탈세속 사회에는 충만한 시간을 향한 갈망이 있다.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 묵상하는 것은 종교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현대 사회에서는 세속의 한복판에서 잠시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_“3장 예전, 시간의 충만함” 중에서
하나님의 거주지 또는 집으로서의 신성한 공간(divine space)은 거주자들의 사고와 행동을 형성한다. 단순히 거주의 영역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분과 실재적인 부분에서 생활과 관계의 중심으로서의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다. 오늘날 세속 도시가 갖는 공간의 상실은 개체의 정체성 상실과 관계성의 소멸과 같은 탈공간적 삶으로 이어져 존재의 불안감과 소외감을 일으킨다. 하지만 창조주의 신적 공간성의 재발견은 우리로 하여금 공간에 관한 세속의 욕망을 내려놓고 모든 존재의 집으로서 갖는 공통성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_“4장 삼위일체의 공간과 공간성” 중에서
중요한 것은 거룩한 장소가 미치는 영향력이다. 종교적인 공간이나 세속의 신성한 공간은 모두 특정한 의미의 발화 장소로서 사람들의 행위와 사고방식 그리고 그들의 관계와 생활의 리듬을 결정한다. 물리적인 공간은 현실의 사회적 구조를 결정할 뿐 아니라 인식과 감정에도 영향을 미쳐 사회적 삶에 강력한 메타포를 제공한다.
_“5장 거룩한 장소의 정치학” 중에서
세속 도시에는 갈 곳 없는 수많은 영혼이 머물 수 있는 ‘집’을 짓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충만한 공간을 세우는 일은 곧 집을 짓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최종적인 집을 완성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집을 재형성시킬(re-homing) 사명감 또한 갖고 있다. 종교는 종교가 실천되는 공간을 인류가 자신의 집과 같은 공간으로 느끼게 해준다.
_“6장 공간을 살아간다는 것” 중에서
코로나를 거치면서 물리적인 공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신앙의 핵심이 다시 시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초연결사회에서 우리는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곳과 모든 사람에 연결될 수 있다. 예배당이라는 장소의 거룩함보다는 주일이라는 시간의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 신앙 행위의 중요한 지표로 인식되어왔다. 디지털 사회에서 ‘나’의 ‘몸’은 예배당에 오지 못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약속된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도 한다.
_“7장 그리스도인의 충만한 하루” 중에서
우리의 일상에는 충만함이 필요하다. 아니 충만한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충만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세속 도시를 살아 있게 하는 주연 배우들이다. 이들은 세속이 잃어버린 충만한 일상을 공동체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한다. 모두의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영역인 일상에 관한 깊은 성찰은 잎이 앙상하게 겨우 붙어 있는 메마른 가지와 같은 곳에 생명의 싹을 틔우게 한다. 그곳에서 곧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것이다. 충만한 사람들은 우리의 일상에 하나님의 순간이 깃들어 있기를 소망한다.
_“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