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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영성을묻다

팀 켈러, 존 이나주 외   |   Feb 25, 2026
  • $40$26 (35 %)
  • 주문수량 권(EA)

  • 상태 : 재고있음(4)
  • * 발송예정일 : 주문일로부터 1~3일 이내
  • (재고부족시 이메일로 연락드립니다)
   
  • 페이지 : 312쪽
  • 무게 : 474g
  • 출판사 : 두란노(도서)
  • ISBN : 9788953152526
  • 상태 : 재고있음(4)
Overview <>

상세정보



※ 이 책은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2020년 6월 출간)의개정판입니다.

 

우리의 설교와 대화의 언어를 완전히 바꿔 줄 책!


현대 사회를 탁월하게 읽어 내는 성경적 해석자 팀 켈러,

세상과 교회의 접점을 넓히는 법학자 존 이나주,

신앙의 실력을 온 삶으로 일구어 온 10인의필진이 뭉쳤다!

혼돈의 시대 한복판으로 들어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다.

 

공동선의 본질과 인간 번영의 의미마저 파편화된 시대, 오늘의 사회는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 시대’를 방불케 한다.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와 세계관 자체가 갈라진 불통의 현실이다. 갈등과혐오가 일상이 된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신실하게 살아간다는 것’은무엇을 의미하는가. 《시대와 영성을 묻다》는 특정 집단만을 위한 지침서에 머물지 않는다. 분열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모두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필자들은차이를 이유로 서로를 적대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 탈기독교 시대를 선교적 기회로 새롭게 읽어 낼 가능성을모색한다. 공격적 변증이나 무분별한 문화적 동화를 경계하며, 성육신적참여와 관계적 선교라는 길을 제시한다.

 

추상적인 구호를 넘어

일상의 실천으로 번역한 복음


필자들은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질문들에 각자의 삶으로 답한다. 복음의 방식인 ‘겸손, 인내, 관용’을 추상적 구호로 남겨 두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 실천으로 풀어 낸다. 신학자, 목회자, 의사, 선교사, 교수, 작가, 힙합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한 차이 속에서도 신실하게 관계맺는 길을 보여 준다. 세상 속에 스며들어 소금처럼 복음 본연의 맛을 내고, 부패를 막으며, 거름이 되어 생명을 일으키는 그리스도인의 공적 신앙을입체적으로 그려 낸다. 겉도는 종교적 수사가 아니라 세상의 심장부에서 복음의 생명력을 증명하는 삶의태도를 조명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독자의 내면과 삶의 방향 전환을 촉구한다. 복음의 다리를 놓는 변화, 바로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자리에서 시작된다!




목차



프롤로그. 하늘 시민권을 가진 이 땅의 나그네들을 위한안내서



Part 1. 시대를 묻다, 시대 속 영성의 틀을 세우다

― 다원주의 환경을 마주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1. 신학자로서 통찰하다

격변의 시대,

정치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2. 목회자로서 통찰하다

우리는 복음의 불로 타오르는

이중 시민권자인가


3. 모험가 정신으로 마주하다

익숙한 답이 통하지 않는 시대,

신앙의 야성을 회복할 시간


4. 개척자 정신으로 마주하다

두려움과 불편을 무릅쓰고

공공의 광야에 길을 내다



Part 2. 좁힐 수 없는 차이 속에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끼리끼리의 벽을 허무는 법


5. 작가로서 통로가 되어

내가 속한 시공간을 정확히 읽어 내며

영원한 현실을 선언하다


6. 송라이터로서 통로가 되어

비극과 아름다움, 그 마디마디를

정직한 노래로 증언하다


7. 스토리텔러로서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거대 서사로,

왜곡된 서사를 다시 직조하다


8. 번역자로서 통로가 되어

두 세계에 온전히 발 딛고서

양편의 언어로 서로를 잇다



Part 3. 세상 한복판에서 어떻게 복음을 살아 낼 것인가

― 메마른 곳에 하나님 나라의 숨결을


9. 다리 놓는 자로 섬기기

오해와 갈등의 현장,

서로 마주 앉을 자리를 설계하다


10. 돌보는 자로 섬기기

성취의 사다리에서 내려와

‘아프고 고단한 동료 여행자’ 곁에 서다


11. 화해자로 섬기기

그리스도의 압도적 사랑에 매여,

답 없는 균열을 파고들다


12. 평화를 이루는 자로 섬기기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이 땅에 ‘샬롬의 질서’를일구다



에필로그. 겸손과 인내와 관용으로, 한 번에 한 걸음씩

감사의 글

필진의 다른 작품들




추천의 글



우리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사랑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기독교적 확신이 강한 이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팀 켈러와 존 이나주는 이 일의 본보기일 뿐만 아니라 이 훌륭한 책을 통해 지혜로운 대화 상대자들을 한자리에모았다. 이들은 점점 더 다원화되는 문화 속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데 필수적인 영적 덕목, 곧 겸손과 인내, 관용을 기르는 데 꼭 필요한 조언을 들려준다.

리처드 마우(RichardMouw) /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 신앙 및 공공생활교수

 

지독한 갈등의 시대에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자 애쓰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통찰력 있고 즉시 실행 가능한 틀을 겸손하게 제시한다. 기꺼이 자신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지혜를 나누어 준 열두 명의 리더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웃과 원수를 가리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도 절박한 과제이며 때로 큰 대가를요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 주듯, 이는 결국예수님의 일이기에 우리는 큰 소망을 품고 이 사랑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

게리 A. 하우겐(Gary A. Haugen) / 국제정의선교회(IJM) 설립자 겸대표





본문 중에서



<21쪽 중에서>

세상에 참여하다 보면 낯선 관계를 맺고 위험한 공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그분은 단순히 안락함을 잃을 위험을감수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이라는 확실하고 분명한 대가를 치르면서 세상에 참여하셨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으로 가셨을 때 사람들은 “그가 죄인의 집에묵으려고 들어갔다”(눅 19:7, 새번역)고 수군거렸지만 예수님은 가시던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다. 사도 요한은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을 기록하며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한다〕”는 점을 강조했으나(요 4:9),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우물가에서 그 여인에게 말을 건네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죽으셨다(눅 23:43). 우리는 복음에 대한 확신과 우리 “믿음의 주요 또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붙들고,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사신 방식대로 살아가고자 한다.

 

<42쪽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실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나는 존 이나주가 제안한 ‘확신 있는 다원주의’가분열된 정치 문화 속에서 베드로의 권고를 실천할 방법이라고 본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내’할 수 있다. 다양한정치적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영원히 주님이심을 아는 장기적인 관점을지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겸손’할 수 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온전히 의존하는 존재임을 알며,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의견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받은 사랑은 자기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모든 것을 온전하고 밝히 보게 될 날을 기다리며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하기 때문이다.

 

<60쪽 중에서>

바울은 우리의 주된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썼지만(빌 3:20-21), 사도행전을 보면 그는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수시로 언급하고 활용했다. 이는 우리가 예레미야 29장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예루살렘 시민이었던 유대인 유배자들에게 바벨론의 가장 탁월한 시민이 되라고 명하셨(4-7절). 직관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인들은우리 “이름이 하늘에 기록”(눅 10:20)되었다는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과 사랑, 기쁨과 용기에 힘입어, 모든 지상 공동체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시민들이 되어야 마땅하다.

나는 이런 성경적 주제들로 무장한 뒤, 문화의바람에 휩쓸려 동화나 은둔 중 한쪽으로 향하는 두 종류의 신자들에게 다가갔다. 첫 번째 집단에게는 그들이이 사회에 좀 더 거북함을 느끼게 하려 노력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이 이 세상의 시민권보다우선함을 깨달아야 했다. 그로 인해 성, 돈, 권력을 사용하는 방식이 도시의 나머지 사람들과 뚜렷이 달라져야 함을 알아야 했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그들이 뉴욕의 진짜 시민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켰다. 나는그들에게 세 가지 방식으로 섬기고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사람들과 만날 때 자신의 신앙을 밝히고, 신앙을 자신이 하는 일과 통합시키며, 지역 사회에서 정의와 긍휼을위해 일하라는 것이었다.

 

<89-90쪽 중에서>

우리는 대개 자신의 핵심 신념과 상당 부분 다른 사람,기관, 운동과 협력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속한가족, 직장, 국가의 목표와 열망이 비기독교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조직의 목표와 갈망이 불의하거나 악한 것일 때는 그것들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가까이 다가가 공통점을 찾아내야 하며, 선을긋는 일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 소금이 소금 그릇에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등불을 그릇으로 덮어 두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서든 선하고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기꺼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평소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라 해도 말이다.

우리는 차이 속에서도 함께 여행해야 한다. 세상속에서 산다는 것은 늘 복음 중심적이지는 않은 사람들 및 사안들 속에서 공통점을 찾는다는 의미다. 모험가에게이는 반가운 소식이다. 색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실까? 내가 공감할 수있는 분투는 무엇일까? 어디에 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 하나님나라는 어디에서 드러나고 있을까?”

이런 관대한 정신의 원천은 순진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에 대한 신뢰다. 이 정신은 기쁨을 기대하게 한다. 낯선 것을 단순히 견디는 상태를넘어, 뜻밖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는 가치를 겸손하게 인정하는 단계로 우리를 이끈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생각에 열려 있게 만든다. 분별과 성경적 비판이 필요할 때가 분명히 있지만, 그 목소리에 반드시겸손과 사랑이 담겨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자세가 우리를 위험에 노출시킨다고 주장할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모험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이 사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모험에 소망과 확신을가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안내자가 신뢰할 만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110쪽 중에서>

앤서니 브래들리 박사는 이 소금의 본질에 대해 놀라운 통찰을 제시한다. 소금을 거름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는 2016년의 〈크리스채너티 투데이〉 기사에서 고대 세계에서는 소금을 거름으로 이해했다는 농업 전문가 유진 디트릭과로버트 포크의 연구를 인용했다. 브래들리는 이러한 관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인다. 필리핀 코코넛청에 따르면, 소금은“작물의 성장과 발육을 촉진하고 수확량을 증대시킨다. …… 실제로 소금 비료를 준 농가들은소금을 쓰지 않았던 코코넛 나무들에 비해 수확량이 125퍼센트나 증가했다.” 브래들리에 따르면, 소금을 거름으로 보는 이러한 이해는 그리스도인들이현재 어떤 것도 제대로 자라지 않는 곳으로 가서 새 생명이 자라도록 도우라는 부름을 받았다는 적용으로 이어진다.“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세상에 맛을 더하거나 세상이 부패하지 않게 막기 위해서만 여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세상의 황폐한 곳에 가서 성장을 자극하고, 세상의거름더미에 기꺼이 섞여 들어가 하나님이 그 거름을 사용하셔서 새롭고 고결한 삶을 일으키실 수 있도록 하는 사명을 받았다.”

 

<115쪽 중에서>

개척자가 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의지를 갖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마지못해 나선 개척자’가된다는 것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그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을 뜻한다. 때로는 사회적 평화, 인종 화해, 공동체적 선의가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희망적이지 않아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섬기는 하나님은 창조적인 분이시기에 우리 또한 지역 사회의 난제들에 창조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하나님은우리를 그분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그분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능히 감당할 역량을 주셨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불편하고 비범한 행동에 나서라고 우리를 부를 수 있다. 우리가그런 상황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종종 당면 과제를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교회나 교단이 당대의 거대한 사회적 이슈들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며 지역 사회의 긴장을 직시하게 되기도하고, 공적 영역에서 신실하게 자리를 지키는 동료 신자들을 지원하라는 부름을 받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안심하고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을 경외하고생명을 전하는 사람들을 위해 언제나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127쪽 중에서>

여기서 나는 작은 기적을 발견했다. 우리가사용하는 언어가 우리 자신을 형성한다는 사실이었다. 너그럽고 사랑이 담긴 언어를 사용하라는 상급자의권고는 우리가 학교 측을 느끼는 방식을 바꿔 놓았다. 정말 그렇게 말과 글을 사용했더니 우리와 의견이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졌고,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대학 측의 좋은 점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대학 측과의 견해 차이를명확히 글로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학계의 진보적 엘리트들을 맹렬히 혹평하는 쪽이 훨씬 쓰기쉽고 관심도 더 많이 끌었을 것이다. 우리가 맡은 더 미묘하고 까다로운 과제는, 공개적으로 의견을 달리하되 어설프고 불완전하게나마 진실하며 겸손한 언어를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논쟁 상대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논증을 구사하는 것, 즉 확신을가지고 말하고 쓰되 잠깐의 만족을 위한 독선적 독설은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 과제에 충실하려니 정신을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고, 우리를 거부한 이들과의 의미 있는 관계 유지를 위해 긴장하면서 노력할 수밖에없었다.

 

<128-129쪽 중에서>

그러나 그해 나는 언어의 한계에도 부딪쳤다. 솔직히나는 내가 올바른 논증을 제시하고 적절한 권위자의 말을 인용하며 잘못된 범주를 뒤흔든다면, 즉 충분히글을 잘 쓰기만 한다면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적절한 말을 찾는 일이 결국 우리를구해 줄 줄 알았다. 그러나 매력적인 태도나 지적 엄밀함, 문화적참여나 섬세함을 동원해도 화해를 가져오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어 그 자체는 구원이될 수 없다. 말과 글은 오해나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져 내지 못한다.말은 편협함과 이기심, 어리석음이나 근시안적 태도로 치닫는 우리의 본성을 끝내 이겨 낼힘이 없다. … (중략) … 말이 없으면 우리는 문화를 변화시키지못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이해할 수도 없으며, 누군가를온전히 알거나 알려질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만으로는 그 과제를 감당하기에 결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말이 우리를 진리로, 궁극적으로는 말씀이신분께로 이끄는 정도만큼만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언어를 사용한다. 그분은 모든 말 이전에계셨으며, 우리의 영광스러우면서도 다루기 힘든 말, 빛나면서도한계가 뚜렷한 이 작은 말들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심판하고 구속하신다.

 

<145-146쪽 중에서>

예수님은 완전한 공동체를 떠나 우리의 폭탄 구덩이 속으로 내려오셨다. 그분 자신의 것이 아닌 고난 속으로 들어와 곡을 연주하셨다. 그것은참으로 놀라운 곡이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군대 동원과 진군을 원했지만, 대신 예수님은 지금까지 울려 퍼진 것 중 가장 아름답고 참된 노래를 연주하셨다. 전쟁으로 찢긴 나라에 있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디서든 폭격으로 패인 구덩이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는 신적 본성에 참여할 수 있고, 만물을 새롭게하시는 하나님과 동역할 수 있으며,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송라이터인 나는 인간 경험 전체를 증언하라는 초청에 응하고, 폭탄구덩이에서 연주된 곡처럼 내 증언 하나를 올려 보냄으로써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191-192쪽 중에서>

번역이라는 나의 소명은 교회 친구들에게는 대학을, 대학친구들에게는 교회를 풀어 전하는 데 있다. 그렇게 이 두 세계를 오가는 삶 속에서 나는 서로 다른 두문화의 언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일종의 이중 언어 번역자가 되었다. 두 문화를 모두 잘 안다는 것은어느 쪽에서도 완전히 편안하지는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수요일,영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안겨 주는 동료들과 교수 회의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들은내 사람들이 아니야.’ 몇 시간 후, 교회에서 영감과 당혹감을동시에 안겨 주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또 이런 생각이 든다. ‘이들은 내 사람들이 아니야.’ … (중략) … 나는 이 두 문화를 잇는 번역을 “한 발은 한쪽 세계에, 다른 발은 다른 세계에” 딛는 일로 생각하곤 했다. 비기독교 대학교의 기독교인 교수로서 나는내 한 발을 대학교에, 다른 발은 교회에 딛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나는 이 비유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유능한 번역자가 되려면 서로 다른 두 맥락에 동시에완전히 몰입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대학에도 두 발을, 교회에도두 발을 다 딛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281쪽 중에서>

예수님이 팔복을 말씀하신 순서에서도 평화를 이루는 일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온유하지 않다면 결코 평화를 이루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평화를 이루는 주체가 아닌, 평화가 이루어져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평화가 나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주어지기만을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우리를자신과 화해시키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깨닫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책임을통감하며, 앞장서서 평화를 가져오고 다른 이들과 평화를 이루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평화를 이루는 자들을 위한 복은 팔복 중 일곱 번째다.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다. 예수님이 이 복을 일곱 번째에 두신 것은, 평화를 이루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시사하신 것이 아닐까? 신자의 온전한 삶은 그가 무엇을 만들어 내고 어떤 일을 일어나게 하는가로 증명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단순히 혜택을 소비하는 자가 아니라 기여하는 자로 부름받았다.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을 위해 차려진 식탁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일구어 낸 열매로 정의된다. 이는 특히 평화의 영역에서 더욱 그러하다.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평화를 이루는 자가 되라고 끊임없이 촉구하신다.